치과에 들어가는 충치 많은 꼬맹이마냥 얼얼한 입을 두 손으로 꼭 막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발치에 티슈 한 각이 놓여져 있는 검고 긴 환자용 베드가 보였다. 뭐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젊은 남자 한 사람이 한 쪽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내시경 검사를 하는 분이었다. 의사인가??
어쨌든 내가 볼 때는 가운을 안 입고 있어서 그땐 몰랐다.
대기할 때 약을 준 간호사분보다 조금 더 상냥한 얼굴을 한 간호사분이
크고 흰 종이를 베드에 놓으며 설명을 했다.
"이쪽으로 돌아누우세요. 다리는 구부리시고, 몸에 힘 빼세요. 검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내시경이 들어갈 때 물이 같이 들어가니까 놀라지
마시고 배에 힘주지 마세요. 구토를 할 것 같으면 숨을 좀 천천히 쉬시면서
참으세요. 구토하시면 검사가 오래 걸려요."
이런... 검사가 오래 걸린다는 말이 가장 무서웠다. 구토가 무서웠다면
비수면 신청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은 검사 끝나면 다시 빼니까 걱정 마시고요. 침 나오는 건 삼키지 마시고
그냥 다 흘려버리세요. 괜찮아요. 끝나고 나가실 땐 저 발치에 있는 티슈로
침 닦으시면 돼요. 검사 시간은 2, 3분 정도 걸려요. 아셨죠?"
간호사는 설명하는 내내 내 뒤에 와서 내 어깨를 살며시 잡고 귓가에 소근소근
속삭이며 설명을 했다. (물론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게
딱 붙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대답을 못 하고 그냥 바보처럼 '에, 에...'
거리기만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내시경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입 안이 마취된 것뿐인데 왜 대답을 못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해서 바보가 되었던 것 같다.
잠시 후 그 남자분이 와서 내시경을 집어들었다. 동시에 상냥한 간호사가
무서운 힘으로 내 얼굴을 위에서 꽈악 내리눌렀다.
그렇다. 간호사가 내 뒤에 와서 부드러운 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이것을 위해서였다!
내시경이 들어가는 순간 목구멍 안의 구토중추가 반응해 헛구역질을 하며
웩웩 거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저항하는 환자들이 많아 검사가
어려워지니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행히 나는 그것을 잘 견뎌 고개를 흔들거나 발버둥치지 않았다.
내시경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니터에는 어떻게 내 속이 보이는지 직접 보고
싶어 눈을 치켜뜨고 있었는데, 아뿔사... 내시경 앞에 달린 LED조명이 너무 셌다.
눈이 부셔 어쩔 수 없이 난 눈을 감아버렸고, 뭔가 뾰족하고 긴 곰방대가 내
목구멍 안으로 그윽 그윽 넘어가는 불편함을 느꼈다.
이런 게 들어왔겠지? 번쩍이는 LED를 정면에서 봐서 내시경이 되게 큰 줄 알았는데...
사진 출처는 참조은병원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2010chamhosp/199528474)
마취를 한 덕분일까, 큰 고통은 없었지만 이물질이 넘어가는 거북함은 어쩔 수
없어 나도 모르게 웩, 웩 하고 작은 헛구역질을 했다.
그때 알았다. 밖에서 듣던 웩웩 소리의 정체가 이것이었음을. 크... 정말 막을 수
없는 소리였다.
'이 정도는 뭐... 굳이 수면을 할 필요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배 속이 부글부글 하면서 무섭게 끓어
올랐다. 정확히는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까 간호사가 설명한 내시경 삽입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물인지 물약인지가
들어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으으윽.'
금식으로 텅 빈 내장에 엄청난 수압으로 액체가 쏟아지자 배가 남산만하게
부풀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소화불량으로 배가 꽉 차 배가 아픈, 그런 느낌
이었다. 큰 고통은 아니었지만 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가를 알 수 없다는 게
공포로 다가왔다. 물론 2-3분 걸리는 내시경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얼만큼 흘렀는지
가늠할 수가 없어 무서웠다. 왜냐하면...
소변과 설사가 한 번에 터질 것 같은 거북함으로 아랫배가 출렁거려서였다.
'설마... 여기서 앞뒤로 퐉 싸진 않겠지?'
흑역사 중의 흑역사를 만들 것만 같은 불안감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점점 공포로 자라났다.
배 속을 쿡쿡 찌르는 내시경과 출렁이는 내장들...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입을 벌리고 술을 한꺼번에 마구 들이부어 사람을
죽게 만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이 이런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를 누르던 간호사는 의외로 내가 크게 요동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손에 약간 힘을 풀었다. 느낌에 검사가 끝나가는 것 같았다.
"위염이 조금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 수면이신가?"
내시경을 집어넣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때까지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내가 너무 안 움직여서 수면인 줄 알았나보다.
"아뇨, 비수면이세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 안에서 내시경이 빠지자 배 속의 물인지 물약인지도 다 빠졌는지
다시 속이 빈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거북함과 더부룩함은 그대로였다.
혀와 목구멍이 마취된 것도 마찬가지였고.
간호사가 미리 안내한 대로 발치의 티슈를 뽑아
얼굴과 목덜미에 묻은 침을 닦아냈다.
비틀거리며 얼얼한 입과 더부룩한 배를 잡고 나오니
아까 약 세 개를 줬던 간호사가 다가왔다.
"조직검사 해서 5,100원이 나왔어요. 수납에 가셔서 계산하시고 가세요."
"어버버버..."
국가검진이라 다 공짜인 줄 알았는데 위염이 조금 있다고 조직을 떼어
조직검사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뭔가 속은 기분이랄까... 아니면 내시경검사의
후유증이었나... 암튼 기분이 안 좋았다.
참... 나 역시 검사실을 나올 때까지도 입 안의 마취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검사 중간에 마취가 풀리면 안 되니 마취가 늦게 풀리도록 여유 있게 약을
썼으니 그럴 테지만.
그래서 아까 그 아주머니의 표정과 컨디션을 공감했다. 나도 검사실을 나오자마자
벌레씹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화장실로 향했고, 아까의 내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대기자들을 보았다. 젠장. 님들도 겪어 보시죠...
우웨엑 우웨엑...
나도 돼지를 잡았다...
병원에서 받은 주의사항 안내
다행히 검사 후 출혈이나 혈변 등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사를 하고 두어 시간이 지나 두유 한 병을 먹고, 그 다음부터는 평상시와
다름 없는 식사를 했다.
다만 그 다음날이 되도록 아랫배가 더부룩해서 조금 불편한 건 있었다.
어쨌거나 큰 탈 없이 비수면내시경을 마쳐 다행이다.
모든 병원의 비수면내시경 검사가 똑같을 순 없겠지만 또 크게 다르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다.
음... 대장내시경은 또 어쩐담... 이것도 비수면으로 해볼까?
근데 이건 좀 부담이 많이 간다. 부위가 부위라서 그런가...
벌써 치질수술을 두 번이나 한 친구들도 있는데 어떻게 했나 신기하다.
대단한 녀석들이다.
비수면내시경... 한 번 해볼 만하긴 한데, 수면으로 하시던 분들은 그냥 편하게
수면으로 하시는 게 나을 듯하다.
*** 검사 후 첫 식사는 죽으로 하고 두 번째부터는
조금씩 식사를 하되,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그랬던가...
하여튼 간호사가 그런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비수면내시경을 하신 적이 있는, 일흔이 넘으신
친구 어머님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님 왈,
"죽은 무슨, 나오면서 그 길로 꽃게탕 먹으러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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