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말, 난생 처음 나라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을 받고 왔다. 물론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에는 여러 번 했던 검진이지만 40대가 넘어서는 처음이었다.
내 기억으로 두어 번 정도 안 간 것 같다. 딱히 아픈 곳 없다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시경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과 거부감이 컸다.
그래서 두어 번을 걸렀다.
국가에서 국민들 생각해서(?) 무료로 해주는 검진을 왜 안 가냐고, 그러다가
나중에 암 같은 큰 병에 걸리면 국가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올해는 꼭 가겠다고 철썩같이 약속을 한 게 1년쯤 전이었다.
새해가 되면 바로 가겠다고 결심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해가 바뀌고 나니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근데 한 번 가긴 가야겠고... 나는 안 받았지만 어머니께서
검진을 받을 때마다 늘 모시고 다녀 연말이 가까울수록 사람이 많이 몰려 한참
기다리고 번거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2월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11월에 예약을 했다.
수면내시경을 하다가 온갖 흑역사를 만들었다는 인터넷상의 간증을 수도 없이
보았기에 나는 그냥 내시경을 하리라고 오래 전부터 마음 먹고 있었다.
친구들 중에는 내시경 경험자가 많았지만 모두가 수면내시경 경험자였다.
비수면내시경 경험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이상한 걸 잘 참는 편이라 목구멍 안으로 내시경 관(管)이 들어가는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참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알고 가면 좀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인터넷을 대충 찾아보았는데 비수면내시경을 어떤 과정으로 하는지
자세히 설명한 글이나 후기가 없어 아쉬웠다.
미리 며칠 전에 병원에 가서 예약을 하니 문진표와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주었다.
전날 꼭 금식을 하라고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물도 먹지 말라니 부담이 갔다.
어쨌든 검사 날이 되어 병원에 갔다. 요새는 신원 확인이 철저해서
모든 항목의 검진 때마다 주민번호를 불러 본인 확인을 했다.
그래서 손에 요런 걸 붙이고 다녔다. 저 손 어쩔...
어쨌든 이런저런 검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내시경검사를 하러 갔다.
검사실 앞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안에서 웩웩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내부의 구조를 알 순 없었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받는 듯했다. 잠시 후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 인상을 쓰고 검사실에서 나왔다.
입술을 굳게 다문 아주머니는 혀라도 단단히 씹은 듯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그 무엇에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꾸웨엑- 꾸웨엑-
화장실 안에서 돼지를 때려잡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검사실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키득거렸다. 물론 나도.
웃기면서도 무서운 상황 속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이름을 불렀다.
검사실 안으로 들어가 대기하는 소파에 앉았다. 예쁜 간호사님이 친절하게
설명을 하며 조그만 컵에 담긴 노란 물약을 하나 주었다.
"비수면이시라 검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약을 세 가지 드릴 거예요.
우선 이건 장활동억제제인데 바로 삼키세요."
나는 그것을 한 번 바라보곤 그냥 꿀꺽 삼켰다. 어릴 때 먹었던 어린이영양제
같은 노란 시럽 맛처럼 달달했다. 씹고 십었지만 그냥 삼키라니 아쉬웠다.
그 다음에는 커피믹스 같은 길다란 비닐스틱의 한 끝을 가위로 잘라 주며
얼른 삼키라고 했다. 그 약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쓸 수가 없지만
그것 또한 달았다. 세 번째 약마저 기대가 되는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도 비닐스틱이었는데 가장 굵고 양이 많아 보였다.
"이건 삽관 하는 동안 목 안이 아프지 않게 마취 하는 거니까 삼키지 말고
입에 물고 계셔야 해요. 삼키시면 안 돼요. 조금 써요."
고개를 뒤로 바싹 젖히고 짜서 입 안에 넣으라는 말에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번 약은 액체가 아니라 고체에 가까운 젤 형태여서 천천히 흘러내렸다.
고개를 젖히고 위에서 쥐어짜며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자니 그게
다 흘러내릴 동안 혓바닥만 마취가 될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두 손으로 꽉
짜서 얼른 입 안에 넣었다.
우웩!
헛구역질이 나고 토가 나올 만큼 썼다. 나도 모르게 간호사를 홱 돌아봤다.
넌 내게 떵을 줬어!
분명 내 표정은 그렇게 소리를 치고 있었을 거다. 일 년 내내 혹은 그 이상
나같은 인간의 썩은 표정을 수만 명은 보았을 간호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 심정 따위는 다 알고
있다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쓰디 쓴 그것을 물고 있었다. 내가 온 후 바로 뒤에 온
어느 어르신도 나와 같은 신세였다.
"고개를 뒤로 젖히지 않으시면 혀만 마취가 돼요. 목 안이 마취 되어야 하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계세요."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젖히고 2~3분 정도 있었다. 혀와 입 안이 얼얼해지는
것이 마취가 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제 그만 뱉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이제..."
간호사가 말했다.
아, 이제 뱉는구나 하며 기뻐하는 순간, 간호사가 빠르게 말했다.
"삼키세요."
정말 그 자리에서 울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버리고 싶었다. 아니 왜
이제 와서 삼키라는 거야... 마음 속으로 간호사 욕을 마구 하며 두 손으로
입을 꼬옥 막고 억지로 꿀꺽 삼켰다.
정말 불쾌한 맛이었다. 샴푸와 린스를 섞어 먹은 맛이랄까... 고수를 처음
먹었을 때의 맛이랄까... 암튼 그랬다. (난 한 번 먹어보고 고수를 다신 안 먹는다)
내시경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내시경을 다 한 기분이었다.
어서 와 비수면내시경은 처음이지?(2)로 이어진다....
주의사항**
검사 전 먹는 약은 병원마다 조금씩 다르다.
내가 간 곳은 마취약을 먹었지만 검사 직전 스프레이식으로
뿌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혹시 비수면내시경 전에 이 포스팅을 읽는 분이 있다면
그냥 참고 정도만 하시면 되겠다.
'끄적끄적 > 일상 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 2018.01.01 |
---|---|
이비인후과를 또 가다... (1) | 2017.12.30 |
이비인후과에 가다... 편측성 난청 (2) | 2017.12.29 |
어서 와, 비수면내시경은 처음이지?(2) (0) | 2017.12.11 |
12월의 시작 (0) | 201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