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스페셜 - 미스김의 미스터리

단막극 보기가 힘든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보니 어쩌다 단막극을 방송한다 해도 그닥 눈이 가지 않는다.

최근 시작한 KBS 드라마스페셜 역시 공모당선작 등을 제작, 방송한다고 하지만 별 관심이 가지 않아서

보지 않았다. 그래도 요새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서 종종 재미있는 단막극에 대한 이야기도 보이고,

금요일 밤 10시에 딱히 볼 게 없다 보니 오늘은 모처럼 드라마스페셜을 한번 시청했다. 

제목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틀었는데 <미스김의 미스터리>라는 작품이었다.

얼핏 어제 인터넷에 기사가 뜬 걸 본 게 생각이 났다. 다솜과 권혁수가 나온다는 제목 정도만 보고

지나친 기억이 났다. 그래도 낯선 신인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보다는 익숙한 사람이 나오는 게 훨씬

낫다 싶었다. 장편드라마 좀 했다고 어깨 힘 주지 않고 다솜이 단막도 찍는다는 게 신통하기도 했다.

하긴 아직 연기력 등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처지이니 좋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포스팅을 쓰기 전 검색을 해보니 미스김의 미스터리는 2017KBS극본공모에서 가작으로 당선한

작품이다. 드라마를 보며 설마 당선작인가 하며 의아했지만 가작이라니 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사진출처: KBS

미스김의 미스터리 대본을 보지 못해 영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상만으로 본다면 안타까움이 많은 작품이다. 대본의 문제라기보다 연출자의

과실이라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촬영을 해놓고도 시간관계 상

잘라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미스김의 미스터리는 그게 좀 심했다.

미스김의 미스터리를 쓴 박선희 작가는 분명 이 대본을 단막극이 아닌 시나리오로

썼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탈락하니 약간의 수정을 거쳐

단막극 공모전에 응모했다고 본다. 망생이들 사이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최소 90분 분량의 작품에서 20분 정도를 걷어내야 하니 중간중간 이야기의 맥이 끊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가가 원래 쓴 대본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작으로

뽑힌 것은 미스김의 미스터리가 적당한 오락물로서 필요한 영화적 요소를 제법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아마 강예원, 한세아 주연의 <비정규직

특수요원>류의 톤앤매너를 지닌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느낌이다. 적당한 액션과 멜로가

나오는 코믹한 오락영화 정도로 말이다. 연출자 역시 작가와 제작 준비를 하며 이 정도

정보는 알았을 거다. 그러면 대본을 단막극에 맞게 더 수정을 하든가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나 보다. 자세한 정보가 알려져 있진 않지만 작가는 십중팔구 신인일 거다.

내가 보기에 신인으로 저 정도는 나름 선방한 퀄리티라 할 수 있다. 어차피 대상이 아닌

가작이니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사 뽑혔다고 봐야 한다. 이에 반해 연출자는

어쨌든 방송국에서 드라마 제작 경험을 쌓은 사람임에도 제대로 영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편집이다.

극 초반에도 그랬지만 중반부를 지나면서 이야기의 비약이 너무 심했다.

백 번 양보해서 시청자가 이해 할 수 있는 정도의 비약이라고 봐준다 해도

너무 몸쪽 깊숙히 들어오는 편집이었다. 이야기가 툭툭 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클라이막스를 지나면서는 더욱 심해졌다. 지금 기억에 남는 장면은

기밀자료를 훔치려던 대리가 발각 되어 잡히기 직전, 도주하는 씬이다.

도망치다가 국정원 직원들과 맞닥뜨린 범인은 전력질주로 달아난다. 국정원 직원들은

그를 쫓아간다. 남주인 권혁수는 드라마에서 중요한 소품인 신제품 런닝화를 신고

범인을 뒤쫓는다. 첨단소재의 런닝화를 신었기에 지치지 않고 범인을 따라잡는다.

달리다 지친 범인은 그로기 상태에서 헉헉 거리며 권혁수에게 잡힌다.

이 시퀀스에서 범인이 국정원 직원과 마주치는 씬 다음에 바로 헉헉 대며 달리는

범인의 모습이 나왔다. 국정원 직원들과 마주친 상태에서 도망가려고 뛰기 시작

하는 컷이 나오지 않았다. 몽타쥬씬을 써서 1~2초만이라도 넣었다면 훨씬 매끄러운

연결이 되었을 장면이다. 물론 그 뒤에 같이 헉헉 대며 범인을 쫓는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도 나왔으니 최대한 너그럽게 이해를 해줄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리 생략 가능한 중간 장면이었다 해도 그렇게까지 잘라낼 장면은 아니었다.

이 장면에 대해 내가 더 뭐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 장면 때문이다.

달리다 지친 범인 앞에 공범인 중국인이 차를 몰고 와 저만치에 선다. 범인을

태우려 기다리는데 범인이 잡히게 생긴 것을 보고는 혼자 달아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인이 달아나기 위해 차에 기어 넣는 장면이 1~2초 정도 나왔다.

그리고 부웅 떠나는 자동차 뒷모습이 한 컷 나왔다.

이게 뭔가?

중국인이 차에 (아무리 스틱운전이 낯선 중국교포라 해도)기어 넣는 장면을

2초나 넣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잘라내도 상관 없는 장면이다.

범인이 잡히는 걸 본 중국인의 놀라는 얼굴 다음에 바로 차가 혼자 떠나는 걸

넣었더도 충분했다. 시동 거는 장면 넣을 시간에 범인과 국정원 직원들이 쫓고

쫓는 장면을 넣었으면 충분했다. 연출자의 과실이다.

이런 편집 오류는 극 전체에 걸쳐 골고루 나타난다. 그래서 조금 더 재미있을 뻔

했던 드라마를 조금 더 재미없게 만들었다.

사진출처: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권혁수, 다솜, 김신일PD

물론 대본에 대해서도 지적할 내용이 있다. 헐뜯으려는 건 아니고...

다솜에게 지령을 내리는 파마머리의 남자는 굳이 나올 필요가 없던 인물이다.

원래대로 영화였다면 등장 필요성이 있었을 거다. 미스김의 배경 설명과 후반부에서

나름의 역할이 분명 있었을 거다. 그런데 70분 단막극에서 그가 나와 한 일은 겨우

국정원 직원이라며 권혁수에게 다솜을 소개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건 다솜 스스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반부에 가서 범인을 잡는 것도 권혁수와 다솜이 하면

그만이었다. 시나리오를 단막극으로 고칠 때 작가는 이 부분을 줄여야 했다.

아마도 문자메세지로 지령을 내리는 내용 때문에 잘라내지 않았나 싶은데,

그 정도는 조금 더 머리를 짜내었다면 충분히... 아니 시나리오와 단막극의 차이를

조금만 더 정확히 알았더라면 작가 스스로 충분히 수정했을 부분이라 본다.

어설픈 망생이들이 단막극과 시나리오는 시간상 차이만 있을 뿐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욕먹을 소리다.

또한 미스김의 미스터리에는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믹요소와 전형적인

플롯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 극장에서 보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웃었을 거다.

뛰다 지친 범인이 국정원 직원에게 다가가 스스로 어딨어요 어딨어 하며

수갑을 찾아 자기 손에 채우는 장면 등은 작가와 연출자의 실수라고 본다.

장르가 코믹물이라곤 하지만 범인은 작품 속에서 코믹을 담당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코믹은 권혁수과 다솜이 서로를 오해하는 장면에서 충분했다.

베테랑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그 씬이 영화의 그것만큼 재미있게만 와닿지

않는 것은 영화 속 범인이었더 배성우의 캐릭터와 미스김 속 범인의 캐릭터의

결이 다른 까닭이다. 진지하고 미스테리하게 나오던 인물이 갑자기 헐리우드

B급 개그를 하니 드라마 내내 유지되던 캐릭터가 깨질 수밖에 없다.

개연성도 없고, 필연적이지도 않다. 플롯이 없는 거다.

대본에 함부로 개그를 넣으면 안 된다. 자기 작품의 질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마지막 엔딩도 전형적인 헐리우드식이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작가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렇게 써넣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너무 길었다.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 작품이 드라마가 아닌 영화였다면

가볍게 웃으면서 극장을 나올 수 있는 수준의 엔딩이다.

문제는 미스김의 미스터리가 단막극이었단 사실이다.

그렇게 긴 엔딩에 비중을 실을 바에는 엔딩을 좀 더 줄이고 

비약이 심했던, 중간중간 잘려나갔음직한 그 장면들을 채워 넣었어도

충분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70분이 빠듯했으면서도 엔딩이 그렇게

길다니... 머리와 상체는 짧고 다리와 발바닥만 큰 인형을 만든 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영상을 3막 구성으로 나눌 때

1막과 2막의 구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반에 남주인 권혁수가 사건에 휘말리는 지점 등이 너무 늦게 나온다.

작가가 몰라서 그런 건 아닌 듯하고 그저 시나리오를 단막 대본으로 급히

고치느라 그렇게 된 듯해서 아쉽다. 글 쓴 작가는 더더욱 아쉽겠지...

그럼에도 이 작품이 뽑힌 까닭이랄까,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답게 잘 썼다고

손꼽을 수 있는 이유는 역시나 클라이막스를 잘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범인 때문에 사무실에 불이 나고, 권혁수는 다솜을 구하기 위해 하나뿐인

신제품 런닝화를 신고 불길을 무릅쓰고 뛰어든다. 중반부에서 다솜과 권혁수가

나눈 대화에 심어둔 떡밥을 기가막히게 거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으로 쓰는 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작가가 글을 꽤 열심히

써온 분인 듯하다. 영화로 못 만들어져 얼마나 아쉬울까...

그래도 이렇게 입봉을 했으니 부럽고, 축하할 일이다. 축하합니다,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