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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블로그 끄적

단막극 분석-내 약혼녀 이야기(4)



역시나 영상을 먼저 첨부하겠다.




출처는 유투브다.    https://youtu.be/oLO47TCVGKU










중간점 이후, 후반부를 살펴 보자.


영상으로는 34:31에서, 선아가 정호에게 서류봉투를 내밀며 후반부가 시작된다.

 

정호가 선아에게 속아 위기를 맞는 과정이다. 역시나 간결한 내용으로

핵심만 설명한다. 

대본상으로 확인해 보면 39씬 읍내카페다. 

여담인데, 영상에는 그냥 거리 공원이나 놀이터 벤치로 보이는 곳에서

간단히 촬영 했다. 빠듯한 단막극 제작 형편상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고 찍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라 짐작한다. 상관 없다. 

이 씬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의 상황이지 배경 장소가 아니니까.

실제 촬영을 하다 보면 이런 건 현장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정호가 스스로 위기를 만드는 동안, 홍매는 예상치 못했던 위기를 겪는다.


정호에게 차인 홍매의 방황 역시 선아와 정호의 데이트처럼 별 대사 없이 

영상 위주로 보여준다. 이 시퀀스에서 홍매가 하는 말, 아니 전체를 통틀어 나오는

대사는 홍매와 공갈빵장사 아줌마의 한 마디가 전부다.

구겨진 지폐 두어 장과 아무리 봐도 목이 매일 것 같은 공갈빵 씹는 모습으로

홍매의 처지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대사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주는 거다.


역시나 최대한 대사 없이 떡밥을 회수한다. 

연변아줌마의 안쓰런 표정 등으로 모든 걸 대변한다. 


사기당한 정호는 휴대폰을 던지고 강가에서 망연자실해 노을만 바라본다.

역시나 대사는 없고 영상만이 정호의 심정을 잘 말해준다.

홍매는 동생 생일에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잘 지낸다는 거짓말을 하고 흐느낀다.

정호와 홍매 둘 다 최악의 상황과 감정에 처한다.


이렇게 위기감이 고조 되면 클라이막스가 나온다.



단속반에 쫓기는 홍매가 차에 치일 듯한, 홍매의 죽음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이브더캣에서 설명하는 절망의 순간 타이밍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스쳐가는 클라이막스다.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중간점에서 홍매를 버려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정호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이제 다시 주인공이 힘을 내어 반격을 해야 할 지점이다.

 

실의에 빠진 정호에게 홍매의 소포가 도착한다.


홍매의 정성어린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뒤늦게 깨달은 정호가

다시 마음을 바꾼다. 


발단-전개-절정-반전-결말에서 바로 반전 부분이다.

세이브더캣 기준으로는 영혼의 어두운 밤 지점이다.


정호는 홍매를 다시 찾기로 결심한다 - 2막에서 3막으로 바뀐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주인공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홍매의 편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막의 구성점은 홍매의 소포를 받은 부분이다.


 


이제 3막이다.

홍매를 찾아다니는 정호. 


3막에서 정호의 목표는 다시 홍매와 결혼하겠다.

이제는 연변처녀의 위험, 옛사랑의 어쩌구... 그런 거 없다.

다른 엄한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홍매를 찾아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

주인공이 정호가 변했다.


정(正)-반(反)-합(合)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난다.


여기서 구두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식당에서 홍매의 구두를 발견한 정호. 





정호가 선물한 것이라 아끼기만 하던 홍매.

정호와 자신을 이어주는, 자신이 한국에 온 의미일 수 있는, 존재의 당위성을 알려주는

매개체이자 잃어버린 희망이자 슬프지만 소중한 추억이다.



거리를 정처없이 헤매던 홍매도 가게 진열장에서 빨간 구두를 보고

자신이 두고 온 구두를 떠올린다.

구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게로 돌아간다.






극에 나오진 않았지만 정호는 구두를 보고 확신했을 거다. 그래서 주인은

구두를 찾으러 온 홍매에게 정호가 다녀간 얘기를 했을 것이고, 홍매는 

'남편이에요'라며 다녀갔다는 정호의 소식에 한 줄기 희망을 갖고, 

편지를 보냈던 주소로 직접 찾아가기로 한다.


구두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십만 원... 안 부쳐 주셔도 됩니다."


홍매의 애절한 한 마디에 마음이 쓰사린 정호. 미안함에 고개를 떨군 그의 눈에

자신이 사준 구두가 들어온다. 





홍매를 버리기 위해 선심이라도 쓰듯, 허세부리며 사준 구두... 

그것을 고이고이 간직한 홍매...




오래 전에 단막극은 소도구라는 명제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책에서 읽은 것인지 다른 작가님께 들은 것인지 긴가민가 한데, 어쨌든

잘 된 단막극은 반드시 이런 소도구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내 약혼녀 이야기에서는 빨간 구두가 정호와 홍매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임에 틀림없다.



 

이제 엔딩시퀀스를 보자.


홍매를 찾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정호. 

넋을 놓고 버스 창문에 기대어 멍하니 있다가 눈에 익은 실루엣을 발견한다.

급히 내려 뛰어간 정호.

서로 마주선 정호와 홍매.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난 두 사람.


서러움과 후회가 뒤섞인 감정이 폭발해 많은 말이 나올 법도 한데

말이 없다.


버스를 세워달라는 대사는 극의 진행을 위한 거니까 제외하자.


정호와 홍매가 만나서 엔딩 때까지 나온 대사는 하나뿐이다.


"십만 원... 안 보내주셔도 됩니다."


분명 초보들은 이 장면에서 하고픈 말을 다 썼을 것이다. 뭔가 멋있는 명대사 하나쯤

남기기 위해 머리를 싸맸을 지도 모른다. 


프로는 안 쓴다. 물론 정유경 작가님 역시 초고에서는 썼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종고(?)로 보이는 (인터넷상에 돌고 있는)대본에는 없다... 프로는 안 쓴다.. 


하다 못해 대본에는 정호가 '홍매씨!'하고 부르는 게 있는데 그것마저 생략했는지

영상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안아주는 걸로 끝...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대사로 쓰지 마라... 당연한 건 생략한다.

 




무슨 의무감이 들어 이 포스팅을 이리 길게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암튼... 이 드라마는 참 잘 써진 드라마다.


잘 된 작품은(그게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음악이든 간에)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살아난다. 그래서 자기만 사는 게 아니라

작가도 살린다.



쓰려거든 열심히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