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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THE 망생이/초짜망생이 튜토리얼

망생이의 세 번째 증상 - 글로 쓰는 건 뭐든 자신 있다?!




제목을 써놓고 보니 '저 말이 요새도 맞는다고 할 수 있나?' 싶다.


요즘 작가지망생 카페에 보면 '글을 쓰는 전공도 아니고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닌데 시나리오작가나 드라마작가를 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거나 보는 게

어딘가 편치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자유민주

주의 국가에서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하는 단순한 생각과

저런 걸 꼭 남에게 물어야만 하나 싶은 의문이 들어서 그랬나 보다.


물론 전공을 언급하는 걸로 보아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일 것이다.

어떤 계기로 갑자기 관심 없던 분야에 눈을 뜰 수도 있으니 이해는

한다. 그래도 저런 식의 질문은 사실 난감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화면 일부 캡쳐


인터넷에는 고등학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질문도 많다





'여태까지 크게 착한 일을 한 적은 없는데, 앞으로 착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질문과 별 다를 바 없다고 본다. 


거짓말 안 하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착하게 살면 돼요... 

네, 이제부터 책 많이 보고 글 열심히 쓰면 작가 될 수 있어요...


이런 답에 만족하려고 저런 질문을 하는 건 아닐 테니...

(만약 그런 거면 헐...)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지망생들은 그랬다. 망생이들의

일반적인 공통점을 꼽아 보자면,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나

드라마도 즐겨 봤으며 그런 영상매체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그

외에도 역사,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고

활자로 된 매체에 두려움이 없었다. 나도 그랬고...


그러다 보니 드라마작가나 시나리오작가를 꿈꾸면서 그것이

짧은 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고는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 꿈이라 어떻게든 여기서 버텨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출처: 내 책을 찍었다 - 슬램덩크 22권 중 한 장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일 거다...






위 이미지처럼 망생이들도 어떻게든 이 바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영화, 드라마와 관계 있는 방송가나 영화계 근처에서 발만 담그고

있더라도 언젠가 작가가 되는 일에 조금이라도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란

믿음을 가진다. 그저 자기 최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특히나 자기가 글을 좀 쓴다는 소리를 주위로부터 꽤 들어왔던 경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그렇지 자신의 실력을 보일 기회만 있으면

금방 작가로 인정 받을 거라 자신하게 된다. 그 기회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방송가, 아니 최소한 글을 쓰거나 글과 관련이 있는 분야라면

어디든 몸담고 앉아 무림의 은둔고수처럼 때를 기다리고자 한다.



글 혹은 드라마,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난 무엇이든 쓸 수 있어' 라고

전의를 불태우지만 막상 기회가 와도 대부분의 망생이들은 이를 잡지

못 한다.


왜? 글을 쓸 줄 모르니까.



나도 그랬다. 오래 전, 드라마 제작 중인 제작사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대본이든 시나리오든 다 쓸 수 있다고 쿨하게 말했다가

나보다 훨씬 어리고 교육원에서 작법강의를 배운 스크립터 아가씨에게

창피를 당했다. 


드라마와 영화는 다르다. 대본과 시나리오도 다르기 때문에

둘 다 잘 쓸 수 없다!


스크립터 아가씨는 단호히 말했고, 독학으로 공부한 나는 뭔가 모르게

찔끔 했다. 물론 작법서에서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 정도는 충분히 읽어

그 차이를 알고 있었기에 나는 둘 다 따로따로 잘 쓸 수 있다고 혼자 자신

하고 있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스크립터 아가씨의 말대로 두 가지를 다 잘 쓰는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아니, 한 가지도 제대로 쓸 능력이 없었다. 

아마 그 아가씨 역시 교육원에서부터 나처럼 둘 다 쓸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을 꽤 보았을 테고, 강사 선생님께 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니 그렇게 단호박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본과 시나리오 모두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작법을 충분히 익힌

사람이라면 시나리오도 쓰고 대본도 잘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프로들의 이야기다.



아직 드라마대본이든 영화시나리오든 제대로 된 습작을 서너 편 이상

써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자신감은 잠시 넣어두기 바란다.






출처: 구글 검색(http://www.ciokorea.com/news/28124)






사실 이 포스팅을 쓰는 이유는 대본과 시나리오를 모두 쓰겠다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공모 당선 때까지 뭐든 글 쓰는 일로 돈을 벌며 버텨보려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런 시도는 좋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꽤 있다. 

웹소설, 웹툰스토리작가, 기타 만화 스토리작가, 바이럴마케팅용 작가,

홍보물기획안 작가, 구성작가, 동화작가, 각종 대필작업 등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렇다고 글만 쓸 줄 안다고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두 이를 전업으로 하는 작가들이 이미 있다. 아주 많이.


위에 적은 분야를 나는 거의 해봤다. 바이럴마케팅만 빼고.


유명 웹툰을 e-북 소설책으로 각색하는 작업도 해보았고,

TV사극을 어린이용 버전으로 내가 고쳐 써서 다른 이의 이름으로

동화책을 대필하기도 했다.


여지껏 어디 가서 글을 못 쓴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드라마대본은 '대본이니까' 공모에 당선되지 않는 한 못 쓴다는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저 소설과 동화로 고쳐 쓰는 작업을

할 때 출판사 측으로부터 글을 못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직접 내 앞에서 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감을 주는 다른 작가를

통해 피드백이 오가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내가 유추해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너무 화가 났다. 1000장 분량의 이야기를 300장 분량으로 줄여달라고

했으면서 (그것도 돈 때문에 줄여달라고 해놓고)문장이 소설 같지

않다고 트집을 잡았다. 어처구니가 없어 일을 안 하겠다고 크게 화를

냈지만 여러 사정상 정말 안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출판사 측의

지적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내 문장이 소설에 맞는 문장이 

아니었던 거다. 


소설을 많이 읽긴 했지만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 전문가들이

볼 때 그야말로 초짜 티가 팍팍 나는 문법이 매우 거슬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선 할 말이 없었다. 


당장 서점으로 달려자 소설 작법과 글쓰기에 대한 책을 여러 권 흝어

보았다.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지금도 작가지망생 카페 등에서 보면 진입장벽이 낮은 웹소설 등을

시도하는 망생이들이 많이 보인다. 웹소설 작가가 목표는 아니지만

공모당선 때까지 그것으로라도 수입을 좀 벌고, 또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글과 관련한 이력을 쓸 때 한 칸이라도 채우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올리는 웹소설 중 재미있는 작품은 찾기 힘들다.

작품의 주제나 소재, 웹소설의 특징 등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문장 자체가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정말 웹소설로 먹고 사는 전문가들의 작품과 비교하면, 아니 감히 비교할 

주제가 아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도 조회수가 낮고, 봐주는 이도 없고,

이내 몇 회 연재를 하다 포기한다.



안타깝다.




웹소설이나 다른 분야의 글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고, 책을 좋아하고, 자신의 의견을 글로 적어 나타내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해서 자신이 모든 분야의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그 분야의 글을 쓰는 작업 역시 대본을 쓸 때 작법과 드라마문법에 맞추어

쓰듯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냥 글씨 쓸 줄 안다고 달려들면 안 된다.



극본공모에 당선 되어 드라마작가, 시나리오작가가 될 때까지 글을 써

먹고 살겠다면, 먼저 공부를 하기 바란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



시나리오의 지문과 소설의 문장은 다르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것도 다르다.


드라마 대본이나 영화시나리오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일단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작법을 확실히 익혀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안목을 갖게 되면 다른 분야의 글과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 구별이 가능해진다.


그때 다른 분야를 더 배우거나 익히면 된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성급히 덤벼들지 말기 바란다.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기회는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다.

독이 든 성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