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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일상 끄적

김운경 작가 강연 후기

지난 12월 5일 인천시 중구에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한

김운경 작가의 강연이 있었다.





인천역은 아주 작다.

작은 문을 나오면 보이는 것은

커다란 차이나타운 입구.


저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인천아트플랫폼이 나온다.






오래된 건물을 리뉴얼해서

사용하는 듯하다.

붉은 벽돌과 벽에 쓰인 글씨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행사장 입구가 보인다.

사실 장소가 서울도 아닌 인천의 한적한 곳이라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와서 놀랐다. 






입구 유리문에 부착된

행사 안내 포스터를 찍어 보았다.


인천시민문화대학에서 주최하는

예술특강이다.


그렇다. 이 강연은 작가지망생을 위한

작법 관련한 강의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위한문화예술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자리였다.


김운경 작가님 연배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시민문화대학에서

공부하고 강의를 듣는 분들이

많이 오셨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행사장은 적당한 규모였다.

낮에 했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주최측도 나름의

상황과 일정이 있어 그랬겠지만.







행사장 입구에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커피 믹스와 원두커피 믹스, 몇 종류의

과자 정도였지만 콘진원 행사에서 실망을

많이 한 내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나름 

나쁘지 않은 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 시작 시간이 되자

김운경 작가님이 집필하셨던

드라마 여러 편의 타이틀과

방영분이 조금씩 상영 되었다.

물론 영상은 유투브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채시라, 최민식, 한석규 등의

젊은 날이 풋풋했다.


서울뚝배기의 마지막회 마지막 시퀀스가

나온 것도 재미있었다.






사회자의 소개로

김운경 작가님께서 입장하셨다.


한지붕세가족,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유나의 거리 등을

쓰신 작가님이라 연세가 꽤 많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으셔서 조금 놀랐다.


검색해 보니 1954년생이시다. 







일찍 들어간 덕분에

맨 앞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인삿말을 하신 후 자리에 앉아

말씀을 시작하셨다.

따로 옆에서 진행을 도와주는 

사회자는 없었고 그냥 혼자

말씀을 하시는 거라 작가님께서도

조금 어색해 하셨다.






작가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교육원에서 강의는 했지만
이런 강연은 흔치가 않아 
본인도 무척 낯설고 막막하다고... ㅎㅎ


청중 대부분이 5~60대 어르신이었다.
작가님과의 친분으로 자리를 채우러
온 듯한 방송관계자분들도 적잖이 보였다.

그뿐 아니라
그 시절, TV에서 가끔 뵐 수 있던
단골 단역 탤런트분들이
의외로 꽤 보였다.

특히나 여성분들이 많았다.  


작가님은 부산 출생이신데
어릴 때 인천으로 와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역 출신의 작가로   
인천문화재단에서 초대한 듯했다.

김운경 작가님은 당신이 자란 이야기와
작가가 된 경위 등을 말씀하셨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
동화작가로 먼저 등단을 하셨다.
그것도 처음 썼는데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TMI: 당선작 제목 - 하느님의  호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소설을 쓰다 KBS에서 드라마를 쓰게 되셨다.

첫 작품이 '전설의 고향'이었는데
헌 책방 등을 뒤지며 옛날 이야기를 
수집하고 보니 기존 작가들이
이미 다 써먹은 이야기들 뿐이었단다.

할 수 없이 당신께서 지어내서
이야기를 만드시곤 확인이 어렵도록
'이 이야기는 함경북도 어디에서 전해지는...'
라고 북한 핑계를 댔다.

사실 이런 건 유명한 이야기다.
'내 다리 내놔'로 유명한 임충 작가님 등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기존 전설을 우라까이 했다고
세월이 지난 후 인터뷰 등에서
말씀을 하셨으니.

여튼 김운경 작가님은 첫 작품을
쓰고 방송 전에 너무 설렜다고 하셨다.
과연 내 작품이 어떻게 나올까...

방송을 보곤 너무 놀라셨단다.
작가의도와 전혀 다르게 나온 방송을 보곤
어떻게 이따구로 찍어 내보낼 수 있나 싶었다고.

욕을 욕을 하셨다 한다.


이로 인해 저질 피디들에게
내성이 생겼다고 하셨다.
초짜 작가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 싶다.

그리고 다음작품으로 '포도대장'을 쓰셨다.

내가 10살 무렵에 방영한 작품이니
모르는 사람도 꽤  있을 거다.
꽃할배 백일섭님이 주인공이셨다.

니는 어릴 때 꽤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인데, 
작가님 말씀으로는 당시 신문기사에
<이럴 바엔 차라리 없애는 편이...>
라는 혹평이 실렸다고 한다.

돌아보면 그때 당신께서도 너무 날림으로
썼다고 인정을 하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평론가들을 존경하게 되었단다.

작가를 분노케 하는 평론이 아닌,
작가를 아프게 하는 평론은 옳다
라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듣다 보니 새삼 이 강연의 성격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작가지망생을 위한
작법 관련한 강의 목적의 강연이 아닌
지역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그 지역 출신의 문화예술인을
초빙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강의였다고 생각 한다.

김운경 작가님은 (당연하겠지만)
드라마작가로서 긍지가 있으셔서
막장드라마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막장드라마는 쓰지 말자.
사실 못 쓰기도 어렵다..."

"남들은 쉽게 써서 좋겠다고 하지만
사실 안 그렇다. 글 쓰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추하고 욕 나온다."

"글쓰기는 어렵다. 일상적 고통의 강도가 매우 세다."


시나리오를 발로 쓴다는 말이 있는데
본인 역시 남들이 다루지 않는
소재와 인물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다루기 쉽지 않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처절한 헌팅이 필요하다...
그 직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요새는 그런 작가들이 안 보이는 듯해서 아쉽고,
남자 작가들의 부재가 아쉽다고 말씀하셨다.
교육원에서도 보면 다 여자작가뿐이라고...


서울의 달을 집필 할 때
실제 노숙자와 제비족 등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스텝을 밟으며 배우던 에피소드도
말씀해주셨다.


그 유명한
'서울-대전-대구-부산-찍고'가
실제 댄스강사가 가르친
요령이라 그걸 그대로 쓰신 거라 하셨다.

그런 이야기에 많은 어르신들이 웃었다.

김작가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작가님께서는 
일본드라마 <바퀴의 한 걸음>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하셨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처음 듣는 제목이었다.

첫 장면은 휠체어를 탄 청년이
계단 때문에 지하에 못 내려가
쩔쩔매는 장면...(이라고 한다)

청년은 그때까지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 고심 끝에 창녀촌에 왔다.
청년의 어머니는 아들의 바램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함께
오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런 곳까지
엄마 도움을 받는 게 속상했던 청년은
엄마를 만류하고 혼자 왔던 거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지 못해
결국 문도 두드려 보지 못 하고 돌아온다.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 어머니에게
청년은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바램을 이루고 왔다고 거짓으로 둘러댄다.

기뻐하는 어머니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입을 틀어막고 서러움에 우는 청년.

이 드라마 방송 후 장애인에 대한
일본과 일본인들의 개선이 이루어져...
창녀촌을 포함(?)한 모든 거리나 건물마다 
휠체어가 갈 수 있게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생겨났다고 한다.

작가님은 이런 것이
드라마의 힘, 드라마가 만드는 긍정적인 영향력
이라고 하셨다.

요즘 드라마 보면 
감성을 피폐하게 만드는 이들이
드라마작가 같다며
계몽적 작품을 쓰려는
작가들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방탄소년단 다큐를 보셨다며
그 애들이 평화를 노래하는 게 좋다고 칭찬하셨다.
드라마들이 그처럼 도덕적이고 희망적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씀하셨다.


교육원 강의가 아닌 이런 강연은 흔치 않아
딱히 할 말이 많지 않다며 질문을 받으셨다.

몇몇 어르신들이 옛 드라마에 대한 향수 어린 질문을 하셨다.



소소한 질문 답변을 간략히 적어 보면


작가님이 가장 쓰시고 싶었던 건 추리물...

공동작업은 이해 할 수 없어...
집단작가제의 단점 - 개성이 없어지는 듯하다...
회의를 해서 어떻게 드라마를 쓰나...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임을 즐기는 이는
해탈에 이르지 못 한다는 격언...

보조작가 너무 쓰지 않았으면...

어느 지망생의 진지한 질문에 답하시며
"절대 직장 그만두지 마라.
그건 정말 미련한 짓이다.
미니 당선 되고, 인정 받으면
그때 그만 둬라."
라는 단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도 질문을 했다.


하나는 
'대사를 대본대로 읽지 않고
의미만 맞추어 애드립으로 하는
배우들이 많은데, 김수현 작가님의 경우
토씨 하나 고치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다.
이는 단순히 작가의 오만이 아닌,
그 인물에 대해 가장 확실히 파악한 사람이 작가이고, 
그렇게 해서 쓰인 대사이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작가님은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여쭈었다.

당연히 작가님께서도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런 배우는 대사를 줄이는 식으로
꾸짖으시고, 대본에 충실하도록
요구하신다 하셨다.

이 질문을 드리는데
작가님께서 약간 놀라시는 듯했다.

"작가지망생들이 많이
왔나 봅니다..."

아마도 인천문화재단 쪽에서는
지역 예술행사이니 편하게 자유로운 주제로
말씀해주시면 된다고 했을 거라 짐작한다.
그래서 정말 편하게 오셨나 본데,
갑자기 두어 명이 연달아 조금 진지한
질문을 하니 뜻밖이신 듯했다.


두 번째 질문은
최근 작품들 중 인상 깊게 보신 작품이나
요즘 작가들 중에 잘 쓴다고 생각되는
작가는 누구인가 하는 거였다.

의외로 없다고 하셨다.
TV를 잘 안 보신다고 ;;;

그래서
세 번째로 질문하려던
인상 깊게 본 최근 헐리우드영화나
미드를 여쭤보려다 그만 두었다.



어느덧 마칠 시간이 다 되었다.

강연 종료 후 싸인회가 있다는 사회자의 말에 
내 뒤에 앉았던, 작가님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러 명의 여성분들이 소리 높여
"싸인 말고 술이나 같이 한 잔 해요..."
라며 웃으셨다. 앞에서 들었는데 분명한 진담이었다.

사람 많은 데서 하도 자연스럽게 말씀하셔서
작가님 지인이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작가님이 힘드실까 봐
싸인은 안 받고 그냥 오려 했는데

화장실에 다녀 오니 줄이 짧길래
그냥 서서 맨 마지막에 싸인을
살짝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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