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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공부/작가, 글, 그리고 책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올해 읽은 책 대부분이

새로운 시대 흐름, 바뀌는 창작 환경 속에서

컨텐츠 생산자가 대비하고

갖추어야 할 문화적 소양과

산업적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세계적인 흐름이야 바뀐지 오래다.

드라마 좀 쓰겠다고 동굴 속에서

몇 년을 지내는 동안 변혁의 파도는

멈추지 않고 높아져만 갔다.

 

조만간 작가가 되어

죽여주는 컨텐츠를 생산하며

멋지게 저 파도 위를 서핑하는

나를 보여주겠다는 깜찍한 꿈은

그냥 꿈도 뭣도 아닌 망상이

되어 버리게 생겼다.

 

세상이 바뀌었다.

계속 바뀌고 있다.

 

20세기가 시작 되던 그 옛날(벌써...)

 

블로그라는 게 생겼다.

많은 이들이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모르는 이들과

친분을 쌓고 쌈박질을 하고

돈을 벌거나 연애를 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매스컴을 통해

블로그가 일으키는 산업적 변화를

보고 듣긴 했지만 월급쟁이 입장에선

시간 많은 잉여들이 열심히 일하기 싫어

유행따라 노는 것 정도로 치부했다.

 

저딴 게 얼마나 가겠어...

 

파워블로거지라는 단어까지

생겨나는 걸 보며

내 생각이 맞았다고 낄낄거렸다.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네이트온에서 카톡으로

바뀌는 시대의 흐름에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남의 일이었다.

 

엽기적인 그녀라는

글 같지도 않은 글이 인기를 얻고

귀여니라는 처자가 낙서 같은 소설로

대학도 가고, 그것이 영화로도

만들어 지는 걸 보면서도

세상이 이상해졌다고만 생각했다.

 

그것도 잠시라고 생각했다.

 

내가 글을 곧잘 쓰는 걸 아는

친구들, 직장 동료들은

인터넷에 소설을 써 올리라고

권유했다. 

 

난 거절했다.

 

그런 애들 장난 같은 거 안 해.

난 진짜 드라마 대본을 쓰는

진짜 작가가 될 거야.

그런 양판소 따위는 나랑 안 맞아.

 

웹소설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고,

내 기준으로 기본적인 문법도 모르는

얼라들이 떼돈을 벌어 억대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세상이 됐다.

 

세상이 이상한 거지만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구나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젠 나도 세상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늘 세상은 젊은이들의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고.

 

십여 년 전, 휴대폰이 없던 어머니께

LG휴대폰을 하나 장만해 드리며

문자메세지 보내는 법을 몇 달에 걸쳐

가르쳐 드렸다. 4절지에 자판을 그리고

몇 달간 똑같은 소리를 했다.

 

가족 간에 배우지 말아야 할 건

운전만이 아니다.

 

어머니가 메세지를 제대로 보내게

되실 즈음, 여차저차 하여 휴대폰을

애니콜로 바꾸게 됐다.

 

천지인 자판을 다시

6개월에 걸쳐 가르쳐 드렸다.

 

어머니는 요즘 문물에 약할 수밖에 없는

노인이니까.

 

그때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렇게 있으면 나는 지금부터

노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씩 블로그에 대해 알아 보고

블로거가 되어 볼까 생각했다.

인터넷카페 운영 하는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뭔가 허전했다.

 

내가 블로그를 운영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요즘 말로 하면 컨텐츠가 없었던 거다.

 

그렇다고 여느 블로거들처럼

맛집, 화장품, 소소한 일상, 연예, 성인물

등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거 할 줄도 모르고

관심 분야도 아니었다.

 

역시 블로그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세상이 또 바뀌었다.

그동안 나도 조금씩 작가 흉내를 내며

글을 써 푼돈을 벌기도 하고,

방송 관련한 일을 하며 내 또래가 아닌

젊고 어린 작가들 밑에서 막내 노릇하며

요즘 아이들의 세상을 접하기도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냥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착하고자 하는 이 바닥의,

방송계도 완전 변해 있었다.

 

정신 차려야겠구나 느꼈다.

 

눈을 크게 뜨고 더듬이를 세웠다.

차츰 세상 흘러가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굳게 작심을 하고

블로그를 시작 했다. 제대로 하려고.

 

그리고 느꼈다.

블로그는 이미 지는 해라고...

내가 한참 뒷북을 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가진 콘텐츠는

드라마대본과 작법에 대한 것들이다.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고, 나중에

그것을 모아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누가 할 일 없이 망생이가

쓰는 책을, 그것도 전문분야의 서적을

출간 해줄까 싶었지만, 그때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책을 써놓으면 언젠가

또는 누군가 출간을 해줄 거라고.

아니, 출간을 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리 긴 세월이 지나지 않아

정말 그런 시대... 아니 그런 시절이 됐다.

브런치 등등 일반인이 책을 낼 수 있는

방법과 경로가 많아지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이 독자를 가르치듯 책을

내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

옆에서 설명해주듯 수평적 입장에서

알려주는 책이 많아졌다는

신문 칼럼도 나왔다.

내가 느끼는 출판계의 흐름도 그랬다.

업계 사람도 아닌 주제지만 그런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난 봄에 읽은 책은 이런 내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사진출처: 내가 찍었다

 

왜 책을 쓰는가 / 김병완 저

 

지금은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

말하자면, 작가 평준화의 시대다. (8p)

 

전문가가 책을 쓰는 게 아니다.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된다.

 

성공한 사람이 책을 쓰는 게 아니다.

책을 쓰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었다.

나만의 컨텐츠로 내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다.

 

단순히 책을 내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책을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 컨텐츠 창작자로서

나를 알리고 내가 만든 컨텐츠를

아주 많이 팔아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사진출처: 내가 찍었다

 

제목부터가 길어서 읽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이 책은 지금 시점에서

컨텐츠를 만드는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사진출처:내가 찍었다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뉜다.

 

창조의 과정

포지셔닝 하기

마케팅 기술

플랫폼 만들기

 

전반에 걸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영원불멸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한때의 유행이나 관심으로 반짝하고

마는 작품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가치를 인정 받을

명작을 만들라는 의미다.

 

당연한 말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크리에이터들은 그것을 원할 것이다.

 

영원불멸의 작품이란 것이 

엄청나게 거창하고 대단한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물론 그런 작품들은 당연히

대단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쉽게 말해

방송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기억도 안 나는 드라마들 말고

'대장금' 같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드라마작가라면 누구나 

대장금과 같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게 당연지사다.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크리에이터가 해야할 일이

단순히 창작에만 열을 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자는

다양한 사례로 설명한다.

 

동시에 창작자로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덕목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다.

 

모든 창작은 올바른 의도로 시작돼야 한다

(41p)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그러면 출판사에서 싫어할 듯하다.

 

앞에 너무 뻘글을 길게 써서

분량조절에 실패한 것도 핑계라면 핑계고...

 

어쨌거나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내가 본 책 중에서

가장 완벽한 책이다.

 

유일한 단점은 298p와 301p에 있는

두 군데의 오탈자뿐이다. 아쉽다.

 

그래도 뭐... 

그건 저자 탓이 아니니까.

 

어느 분야에 몸 담고 있든 간에

크리에이터라면 꼭 일독을 권한다.

 

PS 책의 맨 마지막 장에

행운에 대해 나온다.

행운도 중요하다는 것... 동감한다.

내게는 정말 없는 듯해서 슬프다.

모두의 행운을 빈다.